2009년 한해는 책을 많이 읽었다.
3일 굶은 거지가 잔치집에 한자리 차지하고 앉은 것처럼 종류도 가리지 않고 게걸스럽게
읽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년에 200여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고우영의 삼국지나 허영만의 식객 등 만화책은
제외한다. 만화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분량을 단순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에 비교적 야근이 없었다는 점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동안 야근과 술 등에 찌들어, '음악과 책'이라는 내가 원했던
문화생활에 굶주려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음악:책:기타취미생활(축구,음주,물생활 등)'의 비율이 '4:4:2'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수준이다. (일명
4-4-2)
독서량도 일년에 100권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한다. (음악을 들을 때는 음악만 듣지만, 책을 읽을 때는 거의 언제나
음악을 틀어놓기 때문에 비율의 기준이 모호하기는 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몬테베르디의 '성모마리아의 저녁기도'를 듣고
있다.)
각설하고, 2009년 한해 동안 내게 가장 큰 인상을 심어 준 작가가 있었으니...
그는 - 흔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구로 알려진 - 러시아 작가 푸쉬킨이다.
도대체 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안톤 체홉 등 대문호가 즐비한 러시아에서도 그가 가장 위대하고 창조적인 문학가로 평가
받는지,
무엇보다도 왜 그 많은 러시아 음악가들이 여러 오페라에 그의 작품을 소재로 사용했는지 궁금했고, 그것이 푸쉬킨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직접적인 이유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상호 대립적인 관계였던 국민악파인 러시아 5인조와 전통적인 서방음악의 대표주자였던 차이코프스키가 모두
푸쉬킨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하나씩 읽으면서 어렴풋이 해답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시, 희곡, 산문소설, 운문소설, 기행문 등 그의 작품들은 독창성과 실험정신으로 가득 차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의 작품은 마치 바흐의 그것과 같이 끝없이 넘쳐 흐르는 바다와도 같으며, 다양한 장르에서 이후 작가들의 규범이 되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것을 표현해 내는 방법이 창조적이다.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 차 있는) 예술가라면 그의 작품을 다른 글로, 또는 음악으로 옮겨 보고 싶지 않을까?
더구나 러시아의
음악가라면 말이다.
내게 더 이상 푸쉬킨에 대해 논할 정도의 지적 능력은 없고 그저 지난해 읽은 그의 책의 목록이나마 간단하게 늘어놓고자 한다.
-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 (1799~1837, 러시아)
천재 시인,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 현대 러시아 문학어의 창시자인 푸쉬킨은 모스크바에서 출생했다.
1811년부터 시를 짓기 시작한 푸쉬킨은 1814년부터 <유럽통보>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세계 문학 속에서 방대한 양의 시 저작자로 유명한 푸쉬킨은 이후 서사시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발표, 세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서사시 <카프카즈의 포로>, 희곡 <보리스 고두노프>,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 산문
<벨킨 이야기>, <대위의 딸>, <스페이드의 여왕> 등 불멸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톨스토이가 '러시아 문학의 가장 위대한 주인'이라고 극찬한 푸쉬킨은 두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인의 마음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작가다.
('꼬치고기 가라사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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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킨은 러시아에 구전되어 오는 전래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재구성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고
한다. 이 작품도 그러한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책에 함께 소개된 '꼬치고기 가라사대'를 바탕으로 지은 글로서, 새롭게 창조된 등장인물과 이야기를 전래동화와 동일한 구성을 통하여
써내려간 이야기이다. (즉, 같은 뼈대에 다른 살을 입혔다고나 할까?)
원어로 읽어야 진가가 나타날 것 같은 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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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세계명작으로 읽었던 대위의 딸이다.
푸쉬킨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 장편치고는 짧은 편이며, 푸쉬킨의 작품치고는 덜 개성적인 편이다.
어린 시절 읽은 세계명작은
물론 작년에 다시 읽은 작품도 완역본이 아닌, 쉬운 문체로 바꾼 번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나로서는 진위를 알 수 없다.
푸쉬킨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하며, 서정적이고 - 전쟁이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 평화로운(?)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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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 러시아의 혼란기에 등장한 황제 '보리스 고두노프'를
소재로 한 희곡이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많은 러시아 문학의 소재로도 등장하며 러시아의 역사에서는 많은 논란과 이야기거리를 불러 일으키는 인물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러시아의 강력한 전제군주였던 이반 뇌제가 1584년 사망하자 뒤를 이을 왕자는 어린 피터와 생후 겨우
6개월이었던 드미트리였다.
결국 피터가 왕위(짜르)에 오르고, 병약하고 무능한 피터에 국정이 혼란에 빠지자 귀족 세력의 대표인 보리스 고두노프가 실권을 쥐게
된다. |
그러던 1591년 어느날 짜르의 동생인 드미트리가 칼에 찔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고, 이에 진상조사단을 파견한 것은 다름 아닌 보리스 고두노프였다. 그는 드미트리가 혼자 실수로 칼에 찔렸다는 석연치 않은 발표를 하고,
세간에는 보리스 고두노프가 드미트리를 암살했다는 소문이 퍼진다.
결국 병약했던 짜르인 피터가 1598년에 사망하자 보리스 고두노프가 짜르에 즉위한다.
그러나 그가 즉위하자마자 러시아에 극도의 기근이 돌고, 흉흉해진 민심 속에 드미트리를 참칭하는 인물이 나타나 민중을 선동하고 결국은 이
와중에 보리스 고두노프는 죽음을 맞이한다. (참고로 보리스 고두노프는 부정적으로만 평가되는 인물은 아니다.)
러시아의 혼란과 보리스 고두노프라는 거물, 거기에 드미트리의 참칭자까지... 그야말로 극적 요소는 다 갖춘 역사의 일부라고 하겠다.
이 작품은 보리스 고두노프가 짜르에 추대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 책은 조금 길게 설명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모르면 이 작품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게는 가장 인상깊었고, 강요하지 않는 담담한 전개와 문체이면서도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던 작품이다. (마지막 장면까지도
말이다... 마지막 장면은 화룡점정이라고나 할까... 잘 잊혀지지 않는다.)
무소르그스키의 대표적 오페라인 동명의 오페라의 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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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고두노프에 함께 실린 푸쉬킨의 4대 小悲劇으로 불리는 희곡들이다.
1.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는 우리에게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로 아주 친숙하다. 이 작품도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하는 내용이다. 물론 작품의 성격은 많이 다르다.
물론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의혹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으며 현재는 가능성이 희박한 일로 판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 대해 잠깐이라도 자신의 의견을 언급한 책을 참 여러 권 보았지만 두 인물의 성격과 인간성, 서로에 대한
관계에 이르기까지 이렇게도 의견이 분분한 경우도 드물 것 같다.
어쨌든 푸쉬킨도 그들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하며, 살리에리가 일종의 라이벌이었던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초연에서 야유를
했다는 말을 듣고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 야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살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두 인물의 상반된 예술관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2. 인색한 기사
: 아들마저 적대시하는 지나친 물욕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갑자기 아들이 흘린 100원짜리 동전을 발로 밟고 돌려주지
않는 모 광고 영상이 떠오른다. 누가 기획한 광고인지 참...)
3. 초대받은 석상
: 역시나 문학작품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는 - 바로 앞에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언급했지만 - 돈 주앙을 다룬 풍자적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다르고미즈스키에 의해 오페라로 작곡되었다.
4. 역병시대의 향연
페스트가 휩쓸던 유럽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일을 몽환적으로 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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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청동기마상을 비롯한 여러 편의 서사시가 실려 있다. (모두가 서사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먼저 유명한 '루슬란과 류드밀라'.
매우 낭만적인 이 작품도 어린 시절 동화로 먼저 읽었던 이유로 내게는 시적인 면보다는 줄거리가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플롯은 동화
같고 배경은 환상적이며 문체는 시적이다. 또한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이며 특징이 잘 묘사되어 있다.
러시아의 작곡가 글린카가 동명의 오페라로 작곡했다. |
보잘것 없는 주인공과 표트르 1세의 청동기마상의 대비를 독특한 필체로 보여준
'청동기마상'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거론되는 명작이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까프카즈의 포로', '강도형제', '바흐치사라이의 분수' 등 짧지만 그의 천재성이 번뜩이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여러 작품이 역사적 사실과 배경, 여행 중에 들은 설화 등에 바탕을 두고 그의 무한한 상상력과 터치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탄생했다.
특히 '바흐치사라의 분수'가 인상에 깊이 남는다. 한 군주에 대한 두 여인의 상반된 입장과 감정, 그로 인한 두 여인간의 안타까운
관계, 비극적 결말 등을 푸쉬킨 특유의 필체로 그려냈다.
이 작품 역시 러시아의 동명의 발레의 소재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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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좋은 작품을 출간하고 있는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의 하나다.
'벨킨 이야기'는 묘한 서두와 구성을 가진 옴니버스 이야기이다. (여담이지만 컴퓨터 주변기기 업체인 벨킨과는 무슨 관계인지 궁금한
생각도 든다.)
이야기는 벨킨이 죽은 후 그를 잘 알던 인물이 벨킨이 남긴 글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원제는 '고(故)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의
이야기'이다.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당시 푸쉬킨은 자신이 아닌 남의 이름으로 책을 출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이 책도 자신의 이름으로 낸 것이
아니고 벨킨을 아는 누군가 (두명 모두 가상의 인물이다.)의 이름을 빌려 책을 발간했다고 했던 것 같다.
즉, 가상의 인물의 이름을 빌어
다른 가상의 인물이 전해 들은 이야기를 실화와 같은 분위기로 발표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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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이렇게 - 얼핏 보면 복잡해지는 구조 속에 -
시작된 이야기 자체는 심플하다.
총 5편의 서로 다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복수, 사랑 등 각각의 이야기의 소재도 상이하다.
예를 들면, '발사(發射)'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진행되며, '귀족아가씨-농사꾼처녀'는 읽는 내내 ('황미나', 또는 80년대까지의
'고행석'을 떠올리는) 순정만화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눈보라'의 경우 투르게네프의 소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그러면서도 모든 작품은 따뜻함과 웃음을 담고 있다. 서사적인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일상을 담고 있어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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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이 짧기 때문에 벨킨 이야기와 함께 실린 작품이다.
스페이드 여왕은 카드의 스페이드 여왕 (스페이드 퀸)을 말한다. 또한, 이는 작품 속의 노(老) 백작부인을 지칭하기도 하며, 카드
속의 불길한 징조를 의미하기도 한다.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그리고 있다.
각 등장인물도 특색 있게 표현되어 있다.
내용은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언급하지 않겠다.
차이코프스키에 의해 오페라로 작곡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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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킨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운문소설이다.
또한, 이 작품은 이후 러시아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차이코프스키에 의해 동명의 오페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랄프 파인즈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영화로는 보지 못 했다. 아마도 이 영화 뿐 아니라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졌으리라.) '오네긴'이라는
이름의 드라마 발레로도 만들어져 최근에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차이코프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은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중 최고로 꼽힌다. 차이코프스키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으며
동성애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의 여주인공 타티아나를 이상형의 여인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주인공 예브게니 오네긴 뿐 아니라 비운의 렌스키, 여주인공 타티아나 등 독특하고 매력적이며, 당시 러시아 상류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물론 이들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당시 러시아 사회를 이해할 수 없는 내게 오네긴의 까칠함은
조금은 이질적으로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이반 투루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의 주인공 바자로프에 대한 첫인상과 유사했다. 투루게네프는
자신의 소설의 주인공인 바자로프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
이 작품은 푸쉬킨의 독창성과 실험정신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읽다 보면 마치 푸쉬킨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마음껏, 어떤 형식과 표현의 구애도 없이 표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푸쉬킨은 자신이 잘 아는 사랑스런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참고로, 이 책은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한 번역서이다.
매우 신뢰할만하게도 원문과 함께 번역이 실려 있다.
물론 이 원문은 나로서는 도저히 그 뜻을 알 수는 없으나, 그 자체만으로도
독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친구 동욱군이 읽은 책에 의하면, 의외로 잘못된 번역서가 많아 원문의 가치를 전혀 전달해 주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는 역자가 알 수 없는 부분은 단락이 통째로 누락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도 평론가 유종호 교수가 우리나라의 시인인 정지용이나
박목월의 시에 대한 해설서들의 잘못을 꼬집기도 했지 않은가?
또한, 어떤 소설은 읽으면서도 이 번역서가 완역인지 요약서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어린 시절 '전쟁과 평화'나 '심판' 같은 작품을 짧게 줄이거나 눈 높이를 낮추어 번역한 책을 - 완역에 대한 개념도 없었을 시기이지만 -
읽고는 그 작품을 다 읽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전쟁과 평화' 같은 경우에도 10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을 200~300페이지 분량으로 줄인 책을 읽고도 그것이 완역본이 아니라는 사실도
모른다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게다가 '전쟁과 평화'는 여러 판본이 존재해서 얼마 전에 읽은 초판본의 경우 많이 알려져 있는 수정판본과 느낌이
많이 달랐다.
'전쟁과 평화'야 워낙 유명한 소설이니 그럴 일이 없다 해도, 다른 많은 고전 작품의 경우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이 소설의 두 남자 주인공 오네긴과 렌스키의 결투 장면이다.
(유명한 사실인데다 죽음이 이 작품의 주가 아니므로 이 결투의 결과를 밝혀도 스포일러는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소설 에브게니 오네긴의 주인공처럼 젊은 나이에 결투로 삶을 마감한 푸쉬킨을 애도하며 글을 맺는다.
(푸쉬킨이 그린 자화상과 운문으로 된 서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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