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밤에 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 중 '우연한 여행자'를...
나 무라카미는 이 글을 쓴 사람이다. (중략)
왜 내가 여기에 불쑥 얼굴을 내밀게 되었느냐 하면, 지난날 나를 둘러싸고 일어난 몇 가지 '이상한
사건'에 대해서 직접 얘기해두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략)
당시 케임브리지의 찰스 광장에는 '레거다 바'라는 재즈 클럽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수많은 라이브 연주를
들었다. (중략) 언젠가
피아니스트인 도미 플래너건이 이끄는 트리오가 그곳에서 연주를 했는데, 그날 밤 아내는 다른 볼일이 있어서 나 혼자 들으러 갔다.
(중략)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기대했던 그의 매력적인 연주는 들을 수 없었다. 슬슬 연주가 끝나가려
하자, '이대로 끝나면 안 되는데...' 하는 초조감 비슷한 심정이 강해져 갔다. (중략)
그리고, 토미 플래너건의 연주를 라이브로 들을 기회가 앞으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실제로 없었다.)
그때 나는 문득 이렇게 새각했다. '만일 지금 나에게 토미 플래너건에게 두 곡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면 어떤 곡을 고르는 게 좋을까?' 하고, 한참 동안 궁리한 끝에 선택한 것은 <바르바도스 Barbados>와 <스타
크로스드 러버스 Star Crossed Lovers>라는 두 곡이었다. (중략)
재즈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일단 설명을 해 두자면, 둘 다
특별히 대중적인 곡은 아니다. 연주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다. (중략)
나는 그가 무대에서 내려와 내가 있는 테이블까지 곧장 다가와서, "이봐요 당신, 아까부터 보고 있자니
뭔가 듣고 싶은 곡이 있는 것 같은데, 괜찮다면 말해봐요"라고 말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뚫어지게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전혀 가망 없는 망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플래너건 씨는 무대가 끝나갈 무렵,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이쪽을 힐끗 바라보는 일도 없이, 그
두 곡을 이어서 연주해 주었던 것이다! (중략)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재즈 곡 가운데서, 무대의 마지막에 이 두 곡이 잇달아 연주될 확률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숫자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 이야기의 커다란 포인트지만- 그것은 참으로 매력적이고 훌륭한
연주였다.
두 번째의 이상한 일도 대강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 (중략)
어느 날 오후, 버클리 음악원 근처에 있는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레코드를
뒤지고 있을 때의 일이다. (중략)
그날은 페퍼 애덤스의 <10 to 4 at the 5 spot>이라는 리버사이드의 옛날 LP를 발견했다. (중략)
'10 to 4'라는 것은 오전 '4시 10분 전'을 뜻한다. 즉, 그들은 그 클럽에서 열띤 분위기에
휩쓸려, 새벽녘까지 연주를 계속했던 것이다. (중략)
행복한 기분으로 그 레코드를 사 들고 가게를 나오려던 찰나, 엇갈려 들어온 젊은 남자가 때마침 말을
걸어왔다.
"Hey, you have the time? (이봐요, 지금 몇 시죠?)"
나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Yeah, it's 10 to 4 (4시 10분
전이네요.)"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거기에서 우연의 일치를 깨달은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아니, 이럴 수가, 내 주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중략)
이제부터 쓰는 내용은 한 지인이 개인적으로 들려준 이야기다. 한 번은 내가 우연한 기회에 앞서 말한 두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더니, 그는 한동안 진지한 눈으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실은 저도 그와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하고
말했다. (중략)
그는 피아노 조율사 일을 하고 있다.
(후략)
책을 읽는 동안 CD의 음악이 끝났다.
나는 밤 12시가 가까워졌으므로 조용한 음악을 듣고 싶어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을 꺼내어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시 책으로 돌아와 책장을 넘겼다.
그 다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조율사는 그날, 체육관에 가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도 먹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서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Artur Rubinstein이 연주하는 쇼팽 Chopin의
발라드를 들으면서 그냥 멍하니 있었다.
나는 약간 멍해졌다.
아니, 이럴 수가, 내 주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