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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우승에 담긴 우승 이상의 의미.

글쓴이 : 민선아빠 날짜 : 2010-07-15 (목) 00:00 조회 : 3073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스페인이 우승했다.

그동안 스페인은 무적함대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국제무대에서 국가대표팀의 성적은 보잘 것 없었다.

하지만 유럽 국가대표팀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가시적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유럽선수권대회와 월드컵을 연속으로 제패했다.
(최근에 기억나는 사례는 순서는 다르지만 98월드컵과 유로2000을 제패한 프랑스 정도이다.)




스페인은 민족에 관한한 심각한 불씨를 안고 있는 나라다.

알려진 바와 같이 바스크의 분리독립주의자들은 테러를 서슴치 않는 강경파들이다.
10년쯤 전 스페인에서 대형 열차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이 일의 주모자로 이들이 가장 먼저 지목되기도 했었다.

바스크의 대표적인 축구팀은 '아틀래틱 빌바오'로서
이들은 스페인의 다른 지역 출신들은 좀처럼 팀에 받아 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유명한 카탈루냐 지방.

발렌시아도 카탈루냐 지방이지만
FC바르셀로나가 카탈루냐의 대표적 팀이라 하겠다.

이들 역시 분리 독립을 원하고 있다.
언어 뿐 아니라 국기 및 국가를 따로 가지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카탈루냐 대표팀을 별도로 선발한다.

이 밖에 안달루시아 등 여러 다양한 민족이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실권을 잡고 있는 스페인의 대표주자인 카스티야와 가깝다.

언론에서도 역시 스페인이 우승하자 이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오늘자 신문에도
작년 5월 국왕배 결승전에서 '아틀래틱 빌바오'와 'FC바르셀로나'가 마주쳤을 때
양팀 응원단이 스페인 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등을 돌리고 국가 연주를 듣기를 거부
한 사례가 보도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경기는 민족적, 지역적 색채가 강하고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일종의 대리 전쟁의 성격이 강한 편이다.

이중 가장 유명한 (세계적으로도 가장 유명한) 경기가 바로 '엘 클라시코(El Clasico)'다.

1900년대 중반 당시 카탈루냐 언어 및 고유문화에 대한 말살정책을 썼던
카스티야의 독재자 프랑코 장군은
레알 마드리드의 열성팬이기도 했으며
실제로 막대한 돈을 투입하여 레알 마드리드를 세계 정상에 올려 놓았다.

본래 라이벌 의식이 강했던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치열함은 이를 계기로 절정에 이르렀는데
FC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사람들이 레알 마드리드에 저항하는 상징이었고
이것이 대리전쟁의 성격을 띄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열기가 많이 식었고 양팀의 경기에서 우호적인 모습도 보이지만
불과 10년전만 해도 엘 클라시코의 분위기는 지금과 달랐다.

(내 기억에 1990년 전후에 잠시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기도 했던)
바르셀로나의 심장 루이스 엔리케는
'고생은 카탈루냐 사람들이 하고 돈은 카스티야 놈들이 먹는다.'라는 말로 적개심을 표현
하기도 했다.

그 즈음에 양 팀을 응원하던 이웃끼리 다투다 살인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당시 나우누리 유클동(유럽클럽동호회)에 퍼가기도 했던 터라 기억이 난다.)

양팀간의 이적은 늘 이슈가 될 수 밖에 없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루이스 피구의 이적이다.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던 선수였던 피구는 00/01 시즌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는
믿을 수 없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누가 옳고 그름은 의견이 분분하나 이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적 후 2000년 가을 첫 엘 클라시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경기는 TV 생중계로 보았던 것 같다.)

9만 8천명을 수용하는 '누 캄프'의 관중은 오로지 피구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모든 현수막은 - 아마 수 백개는 되었을 법 하다. - 피구에 대한 증오로 도배가 되어 있었고
특히 3층에서 1층에 이르는 피구의 대형 현수막은 그들의 비통함이 어떤지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전담 키커였던 피구가 코너킥을 차러 가면
그 코너의 모든 관중은 - 어린 아이에서 할머니까지 - 피구에 대한 온갖 야유는 물론
손이 닿는 사람은 마치 지옥의 아귀들처럼 손을 내밀어 피구를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결국 피구는 전반을 마치기도 전에 교체되어 누 캄프를 퇴장했다.




이와 같은 갈등은 대표팀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그동안 스페인은 대표팀 선발에서부터 선수들 간 관계까지 늘 이 문제로 골치를 앓았다.
그것이 그동안 스페인 대표팀이 선수 개개인의 실력에 비해 성적을 내지 못한 원인으로 부각되어 왔다.

이런 여러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는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상황은 - 비록 여러 사회적 갈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 상대적으로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지금 회사에 입사한 것이 2002년 월드컵 직후다.
(나는 월드컵이 끝날 때마다 입사한 지 만 4년이 지나는 셈이다.)


그때 CEO를 포함한 임원진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의 길거리 응원이 세계의 관심을 끌었는데
너무 민족적이거나 획일적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 않나요?'

그때 나는 스페인과 구 유고연방의 예를 들어
물론 단일 민족의 폐쇄성은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한마음으로 집결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장점인지를 역설한 적이 있다.


하지만 뒤이어 월드컵에서 느꼈던 감동을 영어로 이야기하라는 요청에
방금 전의 자신만만함과는 대조적으로 버벅거림으로 일관한 내 영어 수준은
감탄으로 가득했던 임원진의 얼굴을 실망으로 바꿔 놓는데 3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언젠가 아내가 자신의 카탈루냐 친구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스페인 대표팀의 승리를 바라느냐고.

그때 대답을 대강 요약해 보자면.

'스페인의 승리를 바라기는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승리에 대한 간절함과는 비교할 수 없다.'

고 했다고 한다.

그 친구는 지금 스페인의 우승을 어떤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번 스페인 대표팀은 덕장 비센테 델 보스케가 지휘했다.

과거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정책으로
선수는 화려하나 응집력은 모래알과 같아서
어떤 감독이 맡아도 실패했던 레알 마드리드를
당시 2군 감독이던 델 보스케가 맡아서 잘 추스렸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카스티야 출신의 그는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대표팀을 잘 운영하였고
- 내부적인 사항까지 알 수는 없지만 - 선수들도 서로 사심을 많이 버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스페인 대표팀의 월드컵 우승이 스페인을 하나로 만들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화합을 향한 하나의 퍼즐조각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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