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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Fiorentina는 이탈리아 피렌체를 연고로 하는 Club입니다.
(Serie A 팀이라고 쓰고 싶었는데 며칠 전 Serie B로 강등되는 바람에...)
제가 Fiorentina를 좋아하게 된 동기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Batistuta를 좋아하다 보니 피오렌티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Rui Costa의 모습에 눈이 뒤집혔던 것도 같고...
90년대 초,중반 축구 매니저 게임을 하면서 Fiorentina의 감독직을 수행하다 보니 자연스레 팬이 되어 갔던 것도 같고...
제가 몇몇 사이트에서 ID로 사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개인 정보를 공개하면 안 되는데...)
1년쯤 전에 업무 관계로 제 mail ID를 알려 줬더니 상대방이 여자친구 별명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fiorentina... 이름이 참 예쁘죠. 팀 상징도 보라색으로 여성적인 분위기마저 풍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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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오렌티나의 보라색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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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렌티나는 약 75년간 스쿠데토를 2번 차지했고 Italian Cup을 6번이나 차지했으며,
Antognoni, Roberto Baggio, Gabriel Batistuta 등 스타들이 거쳐 갔습니다.
현재는 특급으로 분류될만한 선수를 찾기 어렵고 (아마 이번 월드컵에는 누누 고메즈만이 피오의 이름을 알릴 것 같군요.)
올 시즌 최악의 경기를 펼치며 Serie B로 강등되었지만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Serie A의 Big 7의 한 팀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Fiorentina를 소개하려다 보니 자료 수집에 상당히 곤란을 겪었습니다.
90년대 이전은 저로서도 알 수가 없는 관계로 Fiorentina 공식 홈페이지 내용을 그대로 옮길 수 밖에 없었지만
최근 5년 정도는 제 기억을 그럭저럭 살릴 수 있었습니다. (이 시즌이 저 시즌 같고, 저 시즌이 그 시즌 같기는 합니다만...)
그럼 시대순으로 Fiorentina를 살펴 보기로 할까요?
The Fiorentina in Via Bellini
창단 : 1926년 8월 26일 Libertas와 Club Sportivo Firenze를 합하여 창단.
최초의 공식 유니폼 색 : 빨강색과 흰색
최초의 구장 : Via Bellini (현재의 Artemio Franchi 구장은 1931년부터 사용)
최초의 경기 : vs Signa (lost 1-2)
최초의 공식 경기 : vs Pisa (won 3-1)
Serie A 입성 : 1930/31 Season
Serie A 최초의 경기 : vs Milan (draw 1-1)
Serie A 첫해 성적 : 4위
Serie B 최초 강등 : 19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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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Trophy
최초의 우승컵 : Italian Cup 1939/40
- 첫 경기 : vs Cavagnaro (won 7-1)
- 16강 : vs Milan (won 1-1, 5-0)
- 8강 : vs Lazio (won 4-1)
- 4강 : vs Juventus (won 3-0)
- 결승 : Genoa (won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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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Championship
배 경 : 1950 ~ 1955동안 4위 2번, 5위 2번을 차지하며 강팀으로 자리를 굳힘.
시 기 : 1955/56 S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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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사항 :
| 8 Round부터 단독 선두, 마지막 Round 이전까지 33경기 연속 무패, 5 Round를 남기고 우승 확정, 2위 Milan과 승점 12점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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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 점 왕 : Virgili (21골)
전경기 출장 : Segato, Gratton
The Golden Years
1960년부터 1970년은 Fiorentina 역사상 최고의 시기였습니다.
첫번째 스쿠데토 이후 Fiorentina는 5번의 리그동안 2위의 성적을 기록합니다.
1960/61 시즌에는 리그에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Italian Cup과 Cup Winners Cup을 차지합니다.
(이는 1965/66 시즌과 함께 Fiorentina가 두 개의 title을 차지한 유일한 두 시즌 중 하나입니다.)
Italian Cup에서는 Lazio를, Cup Winners Cup에서는 스코트랜드의 Glasgow Rangers를 각각 물리쳤습니다.
1962년에도 Cup Winners Cup 결승에 올랐으나 Atletico Madrid 에게 3-0으로 무릎을 꿇고 맙니다.
1965/66 시즌, Fiorentina는 세 번째의 이탈리안 컵 우승뿐 아니라 Mitropa Cup까지 차지하여 다시 한번 한 시즌 두 개의 타이틀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들의 황금기는 1968/69 시즌 두번째의 스쿠데토를 차지하며 정점에 오르게 됩니다. 이 시즌 Fiorentina는 역시 단 1 패만을 기록하며 독주를 합니다.
The 70's
Fiorentina 역사상 최고의 암흑기.
하지만 이 시기에도 아주 고무적인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Fiorentin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할 수 있는 Giancarlo Antognoni의 영입입니다.
그는 1972년부터 무려 341 경기에 출장하며 두 개의 타이틀 - 1974/75 시즌 Italian Cup, 1975/76 시즌 Italian-English League Cup (이건 무슨 컵인지 잘 모르겠음) - 을 구단에 안겨 줍니다.
The 8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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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는 새로운 구단주 Pontello가에 의해 10년간 움직이게 됩니다. 이 시기동안 그 유명한 로비(로베르토 바지오)가 피오렌티나에 입단합니다.
피오렌티나는 1981/82 시즌 Juventus에 이어 2위, 1983/84 시즌 3위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세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할 것처럼 보였던 Pontello가는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Passarella, Massaro, Galli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을 팔기 시작합니다.
결국 UEFA Cup에서 Juventus에게 패한 직후인 1990 이탈리아 월드컵 기간에 바지오마저 Juventus에 팔아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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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성난 피렌체 시민들의 폭동이 계속되며 심각한 사태에 빠집니다. 결국 몇 달간의 시위 끝에 Pontello가는 현재 구단주인 Mario Cecchi Gori에게 구단을 넘겨 주게 됩니다.
- 이 부분이 Fiorentina로서는 아주 아픈 기억입니다. 로비가 피오렌티나를 떠나게 되었을 때 피렌체 시미들의 폭동은 대단한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그는 또 다른 친정 팀인 브레시아로 갔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 당시 그는 Fiorentina에 대한 약간의 향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어디서 읽은 기억으로는 그가 피오렌티나와의 원정 경기에서 교체되어 나가던 중 복도에 떨어져 있던 피오렌티나의 보라색 스카프를 집어서 목에 두르고 라커룸을 향했습니다.
그 장면이 기자에게 목격되어 논란이 되었죠. 또 한가지. 현재 체키 고리 집권(?) 하의 Fiorentina 상황은 그때의 완전한 재현으로 보입니다.
더우기 현재 Fiorentina의 재정 및 선수 구성, 팀 사기 등을 볼 때 그때보다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The 2001/2002 season'을 참조하세요.)
The Cecchi Gori Era
The regrettable season 1998/1999
1998년 여름 2002 월드컵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인 지오반니 트라파토니가 부임합니다.
그는 우승을 목표로 바티스투타, 루이 코스타 등을 독려합니다.
우승에 목말라 있던 바티스투타는 팀에 잔류하기로 하고 팀은 전에 없던 의욕을 가지고 세번째 우승을 향해 전진합니다.
밀란과 치열한 다툼을 벌이며 박빙의 선두를 유지하던 1999년 2월 7일 밀란과의 정면 대결에서 Fiorentina는 1-0으로 승리합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바티스투타가 부상을 당하고 결국 그의 공백으로 시즌 종반 밀란은 물론 라치오에게까지 밀리며 3위로 아쉬운 시즌을 마감하게 됩니다.
The adventure 199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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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즌의 뒷심 부족을 느낀 구단은 이제 한발만 더 가면 우승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바티스투타의 공격을 도울 두 스트라이커 엔리코 키에사와 미야토비치를 영입합니다.
하지만 전 시즌의 허탈감 때문인지 공격력을 보강한 전력임에도 불구하고 피오렌티나는 시즌 초반부터 부진을 거듭합니다.
당시 트라파토니 감독은 세 명의 뛰어난 스트라이커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포메이션의 변화를 꾀합니다.
공격진을 3Top으로 구성하면서 선수들의 적응이 어려웠던 것도 부진의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또한 미야토비치와 키에사는 중반부터 부상과 부진을 거듭합니다.
챔피언스 리그 에서는 32강에서 아스날을 꺾으면서 16강에 진출, 16강 리그 첫 경기에서 프리미어 리그 챔피언 맨체스터 유니이티드를 2-0으로 일축하면서 희망의 불씨를 태웁니다.
하지만 그것이 Fiorentina의 전부였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탈락하고 맙니다.
그후 리그 경기는 그럭저럭 종반에 승점을 쌓아 가며 7위로 시즌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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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티를 축하하는 미야토비치와 토리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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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2000/2001 season
바티스투타의 로마로의 이적으로 시작부터 어수선한 분위기로 시즌을 시작합니다.
우승에 너무도 목 말라 있던 바티스투타는 결국 피오렌티나에서의 스쿠데토를 포기하고 일찌감치 이적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전 시즌 부진을 거듭했던 하인리히도 도르트문트로 떠납니다.
또한 감독 트라파토니도 구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진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사퇴합니다.
후임으로 터키의 명문 갈라타사라이로부터 파티흐 테림을 감독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러나 그는 Milan 감독에 일찌감치 욕심이 있었던 듯 시즌 중반 태업을 의심케 하는 행동을 하며 사퇴합니다.
결국 2년전까지 라치오에서 선수로 뛰던 만시니가 감독 자리에 앉게 됩니다.
유로2000에서의 스타 포르투갈의 꽃미남 누누 고메즈와 브라질의 레안드로를 영입하여 바티스투타의 공백을 메우려 했지만, 스트라이커 중 키에사만 제 몫을 해 주었을 뿐 역시 어려운 한 해를 보냅니다.
특히 미야토비치는 부상에서 회복하여 재기를 노렸지만 전혀 예전 Real Madrid에서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 합니다.
(미야토비치는 바티스투타와 함께 뛰고 싶다고 이적 이유를 밝혔지만 함께 그라운드에 나선 경기는 손에 꼽을 정도지요.)
하지만 키에사뿐 아니라 루이 코스타가 1년 내내 지단 못지 않은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유로 2000에서 스타로 탄생한 프란체스코 톨도가 그 기세를 리그에서도 이어 가면서 그나마 9위로 시즌을 마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침체된 분위기에서도 00/01 시즌에는 트로피를 추가합니다.
파르마를 결승에서 누르고 6번째 Italian Cup을 차지하게 됩니다.
지금은 없어진 SBS 축구 채널에서 녹화 중계를 해 준 덕분에 이 감격의 장면을 볼 수 있었죠.
주장 루이 코스타가 트로피를 쳐 들고 환호하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응원하는 팀이 뭔가 트로피 쳐드는 모습은 처음 봤으니까요.
우리나라 대표팀의 경우도 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The 2001/2002 season
암울한 시즌입니다.
워낙 시즌 초반부터 추락을 계속해서 중계도 안 하고 기사에도 나오지 않은 해입니다.
심지어 Serie A 하이라이트 시간에도 피오렌티나 경기는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렸죠.
체키 고리는 Pontello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구단의 경제난으로 시즌 시작 전, 주축 선수를 모조리 팔아 버렸습니다.
팀의 두 명의 키 플레이어 루이 코스타와 프란체스코 톨도를 각각 Milan과 Inter에 팔았습니다.
(사실 원래는 현금을 가지고 있던 파르마에 팔려다 두 선수의 강력한 반발로 무의로 끝났죠.)
피오렌티나의 부진은 예상은 했으나 저는 설마 강등권으로 떨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직 토리첼리, 누누 고메즈, 미야토비치, 키에사, 아다니 등을 보유한 피오렌티나는 중위권 정도는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의 사기는 이미 땅에 떨어졌고 이러한 상황에서 경기는 하나 마나죠.
졸전에 졸전을 거듭하던 피오렌티나는 결국 시즌을 5승 7무 22패라는 믿기지 않는 성적을 내며 18팀 중 17위를 차지하며 Serie A로 강등됩니다.
참다 못 한 피오렌티나 팬들은 시위를 하다 하다 시즌 중반부터 피오렌티나 홈 경기를 보이콧하는 사태에 빠집니다.
시즌 중반 이후 피오렌티나의 홈 경기는 정말 썰렁합니다.
심지어 누누 고메즈가 급여를 받지 못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제 피오렌티나는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언제 다시 Serie A로 올라와서 예전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인지 정말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피오렌티나가 다시 Big 7으로 인정받을 그날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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